
운영시간
📍 장소 : 아트스페이스 보안 1, 2, 3
⏰ 화-일: 12:00 – 18:00
❗ 휴무: 월
콘텐츠
✅ 2025년 보안1942(통의동 보안여관) 하반기 기획전시 《내가 사는 피부》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의 표면인 “흙”을 중심으로 동시대 사회와의 상호작용을 살피며 그 의미를 다각도로 사유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는 흙을 생명과 시간의 층위가 축적된 지구의 ‘피부’로 바라보며 우리가 딛고 살아가는 그 피부에 어떤 감각과 태도로 응답해왔는지 살펴본다. 우리는 피부에 생긴 미세한 변화에도 감각하며 관리하지만 정작 우리가 딛고 살아가는 지구의 피부에는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상처를 가하고 있다. 이번 전시 《내가 사는 피부》는 방치하거나 훼손된 지구의 피부가 다시 인간에게 어떤 영향으로 되돌아오는지 다층적 관점에서 확인하고자 한다.
흙은 생명 순환의 장이자 시간이 얽혀 만들어낸 유기적 집합체다. 인간의 삶은 언제나 흙과 맞닿아 있고 생태적 기반이자 생존의 필수 조건으로 작동해왔다. 하지만 자본 중심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흙은 점차 자율성을 잃고 생명의 장소가 아닌 하나의 자원으로 전락하였다. 이로 인해 토양 고갈과 생태계 붕괴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되돌아오는 위기의 징후들은 점차 도출되고 뚜렷해지고 있다. 농업경제학자 레스터 브라운은 현대 문명이 석유보다 먼저 흙을 다 써버릴 수도 있다고 경고하였다. 우리가 마주한 위기는 단순히 인간의 무지나 습관 때문만이 아닌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사회, 경제적 조건이 흙을 망치도록 유도하고 돌보는 실천마저 방해하고 있다.
이러한 흙을 둘러싼 문제는 정치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와 깊게 얽혀 있다. 플랜테이션과 광물 채굴, 탄소 배출 산업 등 자본과 기술 중심의 개발로 인해 흙을 생산 수단, 자본의 형태로 바라보는 관점이 강화되고 이는 함께 살아가는 주체가 아닌 소모와 효율의 대상으로 전환시켰다.
이와 같은 시각은 자본이 개발도상국의 토지를 대규모로 매입하고 위탁 운영하게 만드는 구조를 고조시켜 지역 공동체의 해체와 생태계의 파괴에 이어 불안정하고 불공평한 도시 노동 환경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이때 발생한 환경 비용은 부를 축적하는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가 대신 감당하게 되고 이러한 불균형한 구조는 은폐되고 전가된다. 흙은 더 이상 중립적이고 포용적인 자연이 아닌 경제 시스템 안에서 정치적 권력 구조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는 흙을 그저 발아래 있는 것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행위자로서 이 체계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번 《내가 사는 피부》 전시에 참여한 네 명(팀)의 작가들은 영상, 설치, 사진 등의 매체를 통해 흙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 정치적 층위에 응답하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유를 펼친다. 언메이크랩은 개발과 착취로 왜곡된 ‘일반 자연’ 현장을 기록하며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성찰한다. 이끼바위쿠르르는 전쟁의 억압된 기억과 잊힌 희생자들을 흙과 광물로 만든 기념비로 소환해 정치적 탄압과 사회적 기억을 재조명한다. 신미정 작가는 사라졌다가 스스로 회복한 밤섬의 기억을 통해 도시개발 속 생명의 순환을 보여준다. 권은비 작가는 흙과 노동에 대해 살피며 여성의 신체와 삶의 반복적 순환을 탐구하며 사회적이고 정치적 맥락 속 착취와 돌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러한 작품들은 흙을 기억과 권력이 얽힌 정치적이자 감각적인 매개체로 다루며 인간과 세계를 잇는 접점으로서 다시 바라보게 한다.
결국 흙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과 감각적으로 연결된 존재이며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그러나 인간은 흙을 통제 가능한 자원으로 간주하며 고유한 속성과 한계를 무시해왔고 결국 그러한 태도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농사는 최고의 농부인 자연을 모방해야 한다”라는 말처럼 흙과의 관계 속에서 겸손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을 모방해 순환을 회복해야 한다. 그 회복의 시작은 흙이라는 감각적이자 물리적인 존재를 다시 바라보는 데서 시작한다. 이번 《내가 사는 피부》 전시를 통해 우리 삶의 기반을 다시 되짚으며 그 안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와 공동의 책임을 함께 사유할 수 있었으면 한다.
박승연(보안1942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