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영시간
📍 장소 : FF Seoul
⏰ 월-금 11:00~20:00
토-일 11:00~20:00
❗ 휴무: 화
콘텐츠
✅ 소도
소멸의 도시
《소도: 소멸의 도시》는 황보민과 이충근 두 명의 작가가 하나의 신화적 내러티브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협업 회화 및 설치 작업을 완성한 공동전시이다. 전시는 ‘소도(蘇塗)’라는 공간을 모티브로 하여 새로이 상상해낸 신화적 공간을 배경으로, 모든 존재가 하나가 될 수 있는 이상향을 그리고 있다.
세상은 갈라지고 있다. 그 갈등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사회적 차원에서 자신과 비아(非我 : 나 밖의 모든 것)를 구분하고 경계 짓는 경향성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으며, 개인적 차원에서 나 자신을 진정으로 성찰하기 보다는 사회적으로 구분된 체계안에 자신을 의탁해버리는 풍조가 만연해졌다. 그 결과 자아는 없고 개인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적 갈등뿐 아니라 개인의 고립과 상처로도 이어진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하나됨’의 가능성을 탐색함으로써, 세상의 갈등을 신화적 세계로 승화하려했다.
세상을 감싸고 있던 꽃송이가 서서히 오므라들며 닫힌다. 기억과 감정, 관계의 순간들은 삶의 조각으로써 하나의 꽃봉오리로 수렴된다. 꽃봉오리가 닫히기 전, 그곳을 빠져나온 새들 중 한 마리가 꽃을 꺾어 물고 날아간다. 어느 순간 허공에서 새는 그 꽃을 떨어뜨리고, 땅에 꽂힌 꽃은 미동도 없이 머문다. 시간이 거듭하고 떨어진 꽃 옆에 새로운 꽃들이 떨어져 함께 들판을 이루자, 꽃들은 함께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나무로 자라난다. 나무로 자란 꽃들 위에 새들이 찾아와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꽃을 모은다. 자라고 자라 어느덧 해와 달에 가까워진 나무는 불에 타기 시작한다. 피어오른 연기는 달을 만나 구름이 되어 비를 내린다. 해가 내린 불과 달이 내린 비에 의해 나무는 흙이 되었다. 흙 속에서 하나의 꽃이 솟아오르고, 그 꽃이 피며 새가 태어난다.
이 설화적 순환은 자아와 타아라는 존재의 망각, 관계의 맺음과 해체, 공동체를 향한 성장과 소멸을 지나 다시 태어나는 흐름을 반복한다. 이 전시는 그런 삶의 순환 속에서 하나됨을 상상하고, 그것을 위한 작은 의례이자, 설화로부터 건져 올린 시적인 공간과 구조로 작동한다. 이러한 소멸과 합일의 순환구조는 설화속 이야기를 넘어, 두 작가의 협업 과정과도 중첩된다. 본 전시는 두 작가의 세계관과 미감을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 속에서 통합적으로 제시한다. 하나의 작업을 만들기 위해서 두 개의 자아는 스스로를 소멸시킴으로써 타자와 합일하기 위한 끝없는 수행을 반복하였다. 지속적인 수행의 과정을 거치며 두 사람은 서로의 언어와 시각이 겹쳐지는 경계에 도달하게 되었고, 그 끝에 ‘소도’라는 합일적 공간을 창조할 수 있었다. 이는 이 전시가 그 자체로 ‘소도’의 설화를 보여주는 설법의 장이자, ‘소도’가 어떻게 형상화될 수 있는지 실험하는 수행의 장임을 보여준다. 설화 속 불타는 나무가 재로 흩어지고, 다시 꽃과 새로 피어나는 이야기처럼, 《소도 : 소멸의 도시》는 자아의 소멸과 재탄생을 반복하며,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됨’의 감각을 되찾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