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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네우마의 껍질
2025-08-16 ~ 2025-09-06


💁‍♀️ 
"The skin of Pneuma "

🔉  TIP

운영시간
📍 장소 : 다이브 서울 
⏰ 월-토: 13:00~18:00
❗ 휴무: 일 

콘텐츠
✅ 프네우마의 껍질
The skin of Pneuma

글 양기찬

공중에 표류하는 막, 그 속에서 안개처럼 퍼지는 면, 공간 사이를 지나며 회전하는 실선 등, 윤이나의 회화에서 두드러지게 등장하는 형상들이다. 현실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는 양태이기에 보는 이들에겐 현실계보다 상상계의 비중이 큰 광경으로 보일 것이다. 그 이유로 누군가에겐 윤이나의 회화가 그저 비현실적이고 사색적인 환영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앞서 몇 가지 나열했던 형태와 구도, 그리고 운동감을 특정한 양상에 따라 수렴하고 반복하는 체계를 보았을 때, 작가는 그가 그려낸 것을 다분히 개인 만의 가벼운 경험과 관념의 산물로 내버려두지 않는 듯하다. 둔감하다고 느끼지 못한 것이 아니고, 인지할 수 없다고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며, 볼 수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단념할 수 없듯이 작가는 그가 거쳐온 시간과 장소 속에서 감지했으나 뚜렷하게 지목할 수 없던 힘을 기억에 의지하여 더듬어 낸다. 그 힘은 눈앞에서 현현하는 압도적인 존재가 아닌 피부를 스치는 감촉, 몸을 감싸는 압력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찰나의 교감이었다. 불현듯이 벌어졌던 접촉은 순간적이었기에 작가는 사건의 발단을 파악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불시에 들이닥친 힘이 그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몸의 반응을 일으키며 작가에게 다가온 존재의 현전과 자신의 여기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는 사실이다.
뜻하지 않았던 맞닿음으로 몸 일부가 분절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작가는 인지적 차원의 몸과 감각하는 실제적 몸이 상이할 수 있음을 실감했다. 이를 통해 윤이나는 의지와 무관하게 외부의 감각을 수용하는 몸을 세계가 투과하는 매체이자, 더불어 표피 아래에 은닉된 시공간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는 몸의 이미지로 드러낼 수 없는 몸, 우연의 사건들 속에서 체감할 수 있던 몸을 매개하기 위해 명징한 정보보다는 기억과 상상에 의존한 기록을 택했다. 현실의 접촉에서 사유된 몸은 정밀하게 측정할 수 없는 비물질적 존재였기에 구체적인 재현은 수행될 수 없었다. 그러나 현실계에서 기원했다는 점, 그리고 이를 몸으로 직접 감각했다는 점에서 작가는 구상적인 몸을 바탕으로 삼아 외부의 충격으로 몸이 팽창하거나 수축하는 형상 등을 연상하며 묘사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드로잉 속에 형태를 이룬 몸의 한시적 감각들은 작가에게 잊혔던 접촉을 회고하는 촉매제가 되었고, 그 중에는 본래의 기록을 거슬러 더 큰 파동으로 변모할 시안으로 응용되었다.

손과 발의 형태, 피부의 살결 등, 신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던 드로잉은 시간이 지나면서 작가에게 아카이브 이상의 물질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드로잉을 반복적으로 접하는 도중, 이미지가 아브젝트(abject)처럼 지각되는 순간, 그것은 그에게 더 이상 감각에 관한 기록물이 아닌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몸처럼 보였다. 과거에는 생생하게 전해지던 체온과 움직임, 그러나 지금은 미동 없는 외피로 남겨진 드로잉 속의 몸은 그저 덧없는 존재의 죽은 껍질이었다. 윤이나는 한때의 산물을 재생시키기 위해 환영적인 공기와 에너지를 동원하기로 했다. 혈관 속 공기의 순환은 몽롱한 색면으로 표출됐고, 몸의 유기적 형태는 분열하고 증식하여 화면에 새로운 율동을 형성해 나갔다. 드로잉에서 유래되었지만 같은 몸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모한 회화적 몸은 현실계의 중력을 거슬러 자유로이 2차원의 공중을 떠다니며 공간을 간섭하는 양상을 띠었다.

얇은 레이어로 겹을 이루어 허공 위로 유랑하는 몸은 작은 마찰에도 찢기고 헝클어질 듯한 가벼운 인상을 풍겼다. 그 와중에도 화면 곳곳으로 퍼져 만개한 표피들은 서로를 휘감고 밀치면서 프레임 너머까지 점진적으로 확장하고 있었다. 드로잉에서는 몸의 형상에 속박되었던 감각이 다른 시공간으로 전이하며 운동을 야기하는 추상적인 기류로 개방된 것이었다. 이처럼 윤이나는 감촉에서 몸으로, 몸에서 운동으로 파급된 힘을 그리기를 통해 되짚고 그 단초가 표명된 장면을 펼쳐 보인다. 그 기원과 목적은 정확히 짚을 수 없어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기억과 육체 안에 잔존해 온 힘은 몸과 세계, 타자와 자신, 인간과 무언가와의 교감을 회고하고 지속시킬 또 하나의 몸으로 그림 속에서 현현한다.

전시 제목, 《프네우마의 껍질(The Skin of Pneuma)》은 육체적이지만 동시에 환상적인 몸을 담아낸 윤이나의 작품을 비유한 말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과 의학에서 ‘호흡’, ‘숨’을 의미하던 프네우마(pneûma)는 세계를 움직이는 생명의 원리, 신체를 기능하는 비물질적 생명력이었다. 이 개념은 중세 그리스도교에선 ‘영혼’, 혹은 ‘유령’을 함축하는 단어로도 활용이 되었는데,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은 이를 재해석하여 언어와 생명 사이에 있는 숨결, 정치적 발화 이전에 작동하는 비언어적 생명성으로 설명한다. 이를 참고하여 인용한 프네우마는 아직 정립되지 않은 육신과 세계 사이의 움직임을 암시하는 개념으로 소개된다. 그림 속 형상의 정체는 온전히 가늠할 수 없지만, 그 유래가 이미지가 아닌 육체의 선명한 감각에 기반을 두었다는 점에서 회화 속의 몸은 육체적이면서도 비육체적일 수 있는 존재로 표현된다. 이곳의 회화적 몸은 과거와 현재, 몸과 몸짓 사이를 연결하는 힘을 보증하는 매체가 되어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육체의 현전성과 보이지 않는 기류를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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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광진구 천호대로 625(중곡동 116-9), 지하    네이버 지도 카카오맵 T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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