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영시간
📍 장소 : 스페이스 엄
⏰ 화~토 11:00 ~ 18:00
❗ 휴무: 일, 월
콘텐츠
✅ 파수, 간절히 지키고 싶은 무언가에 대해 | 엄윤선 스페이스 엄 대표
경기도 양평의 강석문 작가의 집과 작업실은 전원 속에 위치한다. 주변은 온통 나무와 풀들이다. 자연친화적인 장소인만큼 야생동물들의 출몰도 잦다. 작가를 만나러 방문할 때마다 마당에 뱀은 없는지 살펴볼 정도로 말이다.
새도 벌레도 참 많다. 특히 그의 작업실 근처에서 보이는 새들은 도시에서 흔한 까치, 참새 정도가 아니라 조류도감에 나올 법한, 학자들이 연구하고 관찰하는 수준높은 부류들이다. 작가는 매일 보이는 새들에게 박군, 권양 같은 애칭을 지어주었고 그들은 오랜 시간 강석문의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이번 전시의 새로운 히로인은 ‘파랑새’다.
2년 전 강석문 작가의 작업실을 처음 방문했을 때 눈길을 잡은 건 작업들이 진행된 거친 종이였다. 닥나무의 질감이 도드라졌고 색도 표백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누런 빛이었다. 모든 종이는 작가가 직접 만들었다고 하니 진정으로 작업의 시종始終이 작가의 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한쪽에 쌓아둔, 그려지길 기다리는 한지 자체만으로 이미 작품이 되어있었다.
이번 전시 준비를 위해 작업실을 다시 방문했을 때, 작가가 손수 만든 한지만큼 눈에 띈 건 그림이 그려진 어린 아이의 필기와 이런 저런 메모가 끄적거려진 종이들이었다. 오래된 공책들, 그러니까 이미 대학을 졸업한 아들의 초딩시절 공책을 바탕으로 사용했다. 이유를 물으니 종이가 아까와서란다. 종이를 직접 만들고 있으니 그 귀함을 뼈저리게 느낀 건지, 아니면 아들의 어린 시절 흔적이 아까운 건지. 재료로써는 물론,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감성적, 서사적으로 큰 역할을 할 거란 짐작이 든다.
작가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며 이번 전시의 제목을 <파수>로 정했다. 책의 많은 논쟁거리들 - 폭력과 외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주제는 “끝까지 지켜야하는 순수”이다. 작가는 그의 작업노트에서 ‘날개가 있어도 추락하는 것’들을 지키고 싶다고 했다. 집근처에서 발견한 파랑새. 아들의 오래된 공책. 파랑새의 이미지는 언제나 밝고 긍정적이며 아들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마음이 애틋하고 몽골몽골해진다. 이쯤되니 작가가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지 퍼즐이 맞춰지지 않는가. 아들의 추억을 빌린 애정과 축복을 희망의 상징 파랑새에 담았다. 그의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의 행복을 파수하고자 하는 강력하고 아름다운 부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