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영시간
📍 장소 : 스텔라갤러리
⏰ 화-일: 13:00~18:30
❗ 휴무: 월
콘텐츠
✅ [전시서문]
“한 알의 콩이 사막을 건너고 바다를 만나 세계가 되었다.”
우리의 여정은 이처럼 뜻밖의 우연과 미미한 출발에서 비롯된다. 때로는 커다란 꿈이나 계획보다 아주 작은 충동 하나가 인생의 경로를 더 흥미롭게 만든다.
정정엽 작가는 수년간 자신을 하나의 콩으로 여기며 지구 곳곳을 굴러다녔다. 먼지 낀 길가에서, 낯선 도시의 소란 속에서, 조용한 사막 한가운데서 작가는 작은 스케치북을 펼치고 삶이 지나가는 순간들을 기록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열 권의 스케치북이 이제 여행기 『콩은 어디든 굴러간다』로 출간되었고, 그 원작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관람객들과 만난다.
작가의 드로잉은 단순히 풍경을 담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순간을 포착해내는 작가의 예민한 관찰력과 세심한 태도에 대한 증언이다. 데스밸리의 모래와 사막의 공허함, 이국 도시의 번잡함과 밤의 활기, 그리고 어딘지 모를 낯선 골목의 신비로움이 작가의 펜끝에서 경쾌하게 춤추듯 펼쳐진다. 정정엽의 드로잉은 서두르지 않고 머물며 관찰할 때에만 발견할 수 있는 작은 기적과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조용히 일깨워준다.
오랫동안 곡식, 콩과 팥을 그려온 작가에게 이 작은 알맹이들은 평범한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커다란 가능성의 은유다. 이 전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일상과 예술이 만나는 시적 공간이다. 여행과 노동, 우연과 필연이 어우러져 형성된 그녀의 작품 세계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 역시 하나의 작은 여행이자 예술적 창조 행위임을 암시한다.
우리는 종종 여행이 먼 곳에서만 이루어지며 특별한 결단을 요구한다고 착각하지만, 작가는 가장 평범한 일상도 일종의 여행이며 매일의 삶 속에 무수한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이야기들을 따라 걷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작가가 느꼈던 희열과 기쁨, 그리고 삶에 대한 다정한 호기심을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
한 알의 콩이 굴러가듯, 작고 소소한 선택들이 모여 우리의 인생을 만들고, 우리는 그것을 따라가며 비로소 진정한 여행자가 된다. 이번 전시가 여러분 각자의 마음속에 놓인 작고 둥근 콩을 다시금 굴리고 싶은 충동을 일깨우기를 희망한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음을 떠올리며.